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 사이에서 대법관 임명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8월 손봉기·김성수 후보자를 대법관으로 임명해달라며 대통령에게 제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이전과 조금 달랐습니다. 통상 대법관을 제청하기 전 대통령 측과 후보자를 조율해왔던 관행과 달리, 이번에는 최종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제청했습니다. (연합뉴스)
이후 이재명 대통령은 손봉기 후보자에 대한 제청을 사실상 반려하고 재제청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조희대 대법원장은 재제청 요구에 헌법적 근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연합뉴스)
표면적으로 보면 대통령과 대법원장 사이의 인사 갈등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흥미로운 헌법적 질문이 하나 등장합니다.
대법관은 도대체 누가 선택하는 것일까요?
‘제청’과 ‘임명’ 중 어느 쪽이 실질적인 권한일까
우리 헌법 제104조 제2항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따라서 대법관 한 명이 임명되기까지 세 개의 헌법기관이 관여합니다.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가 동의하고,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법제처) 문제는 헌법이 여기까지만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장이 제청한 사람을 대통령은 반드시 임명해야 할까요? 아니면 대통령에게도 후보자를 거부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임명권이 있는 것일까요? 헌법은 이 질문에 명시적인 답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단순히 법에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에게 실질적인 후보 선택권이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 헌법에는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대통령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다른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헌법재판관입니다.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대통령이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
헌법재판소법 제6조 제1항은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제2항에서는 재판관 중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사람을, 또 다른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사람을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제처) 즉 헌법재판관 9명 모두 법적으로는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국회가 선출한 3명에 대해서 대통령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문제는 2025년 헌법재판관 임명 논란을 거치면서 실제 헌법적 쟁점이 됐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가지는 헌법재판관 선출권을 단순히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한 권한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헌법재판소 구성에 관한 국회의 독자적이고 실질적인 권한으로 봤습니다.
따라서 국회가 적법하게 재판관을 선출했다면 대통령 또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별도의 정치적 판단을 통해 그 사람을 다시 선택하거나 선별하는 구조로 보기 어렵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사건에서도 국회가 적법하게 선출한 재판관을 임명해야 하는 대통령 측의 헌법상 의무가 중요한 쟁점으로 다뤄졌습니다. (다만 헌재 다수의견은 당시 한 권한대행에게 이를 검토할 상당한 시간이 주어졌다고 보기 어려워 구체적인 작위의무 위반까지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법제처)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 수 있습니다. 헌법에서 말하는 ‘임명’이 언제나 실질적인 인사 결정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생깁니다. 대법관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은 어떨까요?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은 형식적일까, 실질적일까
여기에는 아직 명확하게 확립된 답이 없습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실질적인 후보 결정권으로 해석한다면 대통령의 임명은 상당 부분 형식적인 절차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통령의 임명권을 실질적인 권한으로 해석한다면 대통령에게는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를 거부하고 새로운 후보를 요구할 여지가 생깁니다. 하지만 어느 한쪽으로 강하게 해석하면 다른 쪽의 헌법상 권한이 약해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를 계속 거부할 수 있다면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얼마나 실질적인 권한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대법원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면 헌법이 굳이 대통령에게 ‘임명’이라는 권한을 부여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국회의 동의권까지 존재합니다. 결국 대법관 한 명의 임명에는 대법원장의 제청권 → 국회의 동의권 → 대통령의 임명권이라는 세 가지 권한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헌법은 세 기관을 참여시켜 놓았을 뿐, 각각의 권한이 어디까지 실질적인 것인지 그 경계선을 자세하게 그어놓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이런 애매한 구조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헌법 제104조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서야 이 문제가 크게 이슈가 되는 것일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법이 정하지 않은 부분을 관행이 메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에는 대법원장이 공식적으로 후보자를 제청하기 전에 대통령 측과 후보자를 조율하고,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뒤 공식적인 제청 절차를 진행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조율이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대법원장이 서면으로 제청하면서 기존 관행과 다른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연합뉴스)
과거의 구조를 단순화하면 이랬던 셈입니다.
후보 추천 →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사전 조율 → 대법원장 제청 → 국회 동의 → 대통령 임명
이렇게 하면 헌법의 애매함이 드러날 일이 별로 없습니다.
대통령이 특정 후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공식적인 제청 이전에 의견을 조율하면 됩니다. 대법원장 역시 공식적인 제청이 거부되는 상황을 겪을 필요가 없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임명권이 어디까지인지 주장할 필요가 없었고, 대법원장 역시 자신의 제청권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합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헌법에 적혀 있는 권한을 양쪽이 각각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관행 아래 숨어 있던 질문이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대법원장이 제청했는데 대통령이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가?
헌법에는 그다음 문장이 없습니다.
민주적 정당성과 사법부 독립
여기서 이 문제는 단순한 인사권 다툼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로 이어집니다. 우리나라의 국가권력은 국민주권을 기반으로 합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국회의원 역시 국민이 선출합니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강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법관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 역시 분명합니다.
법원이 매 순간 다수 국민의 여론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면 법에 따른 독립적인 판단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헌법 제103조는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합니다. (법제처)
여기서 일종의 역설이 발생합니다.
사법부 역시 국민주권을 기반으로 정당성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국민이 선출한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대통령에게 대법관 인선에 대한 지나치게 강한 영향력을 부여한다면 민주적 정당성은 강화될 수 있지만, 사법부가 행정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또 다른 헌법적 가치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통령의 임명권을 완전히 형식적인 것으로 보고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매우 강하게 해석하면 사법부의 독립은 강화될 수 있지만,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대법관 후보자를 결정하는 최초의 실질적인 선택권을 대법원장이 온전히 가져도 되는가?
물론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혼자 임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회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국민이 선출한 국회가 중요한 민주적 통제 장치로 작동합니다. 그럼에도 대법관 후보자를 처음 선택하는 제청권이 어느 정도의 실질적 권한인지, 그리고 대통령의 임명권이 어느 정도까지 이를 견제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별개의 문제로 남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 헌법은 대법관 임명에 세 권력을 모두 참여시킨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제청합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동의합니다. 그리고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사법부의 독립과 민주적 정당성, 그리고 권력 간 견제를 동시에 확보하려는 구조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균형점을 헌법이 정확하게 어디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헌법의 빈칸을 관행이 채워왔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서 어느 한쪽이 헌법적으로 명백하게 옳다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의 임명권을 어디까지 실질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어디까지 독립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동안 잘 보이지 않았던 우리 헌법의 빈 공간이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헌법은 대법관 임명에 대법원장, 국회, 대통령을 모두 참여시켰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제청을 거부할 수 있는지, 거부할 수 있다면 어떤 사유가 필요한지, 몇 번까지 가능한지,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사전에 협의해야 하는지 같은 세부적인 문제까지 규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빈 공간을 오랫동안 ‘사전 협의’라는 관행이 채워왔습니다. 관행이 작동하는 동안에는 문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관행은 법이 아닙니다. 한쪽이 더 이상 그 관행을 따르지 않으면, 결국 남는 것은 헌법에 적힌 몇 줄의 문장뿐입니다.
이번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의 충돌은 어쩌면 단순한 두 사람의 갈등보다 더 오래 남을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대법관은 누가 선택해야 하는가.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대법원장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해야 할까요. 민주적 정당성과 권력 간 견제를 위해 대통령에게도 실질적인 임명권을 인정해야 할까요. 아니면 현재처럼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서로 조율하고 국회가 마지막으로 동의하는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할까요.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질문에 법으로 답하기보다는, 서로 충돌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행에 기대어 답을 미뤄왔습니다.
그리고 그 관행이 깨진 지금,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질문에 답해야 할 순간이 찾아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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